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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알못 소금이/곡 and 음악가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 / 말러

by 소금pd 2024. 4. 20.

1. 구스타프 말러 (1860-1911)

 

말러와 그의 아내였던 알마 신들러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겸 지휘자 말러는 워커 홀릭이었다. 경제적인 문제로 지휘자 생활을 계속했지만 아마 여유로운 형편이었다면 전업 작곡가가 되었을 거다. 오페라 등 시즌이 끝나면 알프스에서 교향곡 작곡에 몰두하는 때가 그에게는 작은 행복이었다.
 
말러는 낭만주의에 보편적이었던 주제- 사랑에 대한 것보다 삶과 죽음에 대한 노래를 지었다. 말러의 아버지는 폭력적이었고 말러를 포함한 14명의 형제 중 8명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이나 어머니에 대한 연민, 죽은 형제들을 향한 슬픔과 죄책감 등은 어린 시절부터 말러를 괴롭혔다. 그는 평생 완벽주의자였고 자기파괴적인 성격을 고치지 못했다.
 
말러가 오케스트라에 있던 당시 단원들과의 긴장된 관계는 늘 회자가 되는데, 실수를 하면 참지 못하고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살벌하고 단호한 리허설 시간은 두려움의 시간이었지만 언제나 높은 완성도의 음악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단원들은 말러에게 쉽게 반박하기 어려웠다.
 
극단적이고 격렬한 지휘의 제스처도 말러의 시그니처였다. 또한 악보에 적힌 템포나 아티큘레이션을 수정하는 일도 잦아 평론가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시대에 맞게 음악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고집이 있었다.
 
휴가기간에도 작곡에만 매달렸기 때문에 말러에겐 특별한 휴식 같은 시간은 없었다. 일에 대한 강박 때문에, 결혼식도 오케스트라 리허설 쉬는 시간에 하고 돌아올 정도였다.
 
전속 지휘자 생활로 작곡할 수 있는 시간이 적다보니, 남긴 작품의 수가 적은 편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발표한 곡들이 낭만주의의 대세적 흐름과 맞지 않다 보니 조롱을 받았었다.
그러나 레너드 번스타인이 그의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면서부터 대중들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실험적인 새로운 시도도 많았다.
보통 교향곡이 60-70분 정도였다면 말러의 교향곡 3번은 100분에 이른다. 교향곡 8번(천인 교향곡) 초연은 무려 1029명이 무대에 섰다. (858명의 성악가, 171명의 연주자)
 
유대인이었던 말러가 오스트리아에서 독일로 넘어가 지휘자 활동을 한 시점부터 세계적인 정세가 유대인에게 불리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빈 궁정오페라단 음악감독으로 발탁이 되면서 다시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주하게 되지만 반대하는 여론도 많았기 때문에 유대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빈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반유대주의 정서 속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그이지만 음악 안에서만큼은 자유롭게 표현하며 숨을 쉴 수 있었다.
 
 

2. 교향곡 5번 4악장 아다지에토

 
교향곡 5번은 총 다섯개의 악장으로 되어 있다.  
 
이 곡은 알마를 만나게 되면서 쓴 작품으로 유명한데 말러의 교향곡 중 가장 낭만적이라고 평가받는다.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과 한국 영화 '헤어질 결심'에도 삽입되었다. 
 
교향곡 5번은 끊임없이 수정을 거듭하여 출판사에서 짜증을 낼 정도였다고 한다. 말러의 완벽주의 경향이 또 확인된다. 
 
빽빽하게 차 있던 앞장을 지나 현악기와 하프로만 채운 느리고도 찬란한 부분이다. 
 
정명훈 지휘의 NHK교향악단 버전을 들고 왔는데, 너무 이상한 것은 단원들이 거의 남자라는 점이다. 원래 그런 건지 이번 연주만 이렇게 편성이 된 건지 모르겠지만. 일본이 남성중심의 사회인 건 알겠는데 나에겐 너무 의아한 광경이었다. 
 
 
https://youtu.be/75YmlDR92UQ?si=i2FL3RdMYviqW1yG